⬅ 목록으로 돌아가기

🌙 눈을 감고 편안하게 들어보세요

인간산문
이효석 (1936)

거리는 왜 이리도 어지러운가.

거의 삼십 년 동안 걸어온 사람의 거리가 이렇게까지 어수선하게 눈에 들어온 적은 없었습니다. 사람의 거리란 일종의 지옥 같은 곳입니다.

문오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습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모든 감각을 조개처럼 닫아 버리면, 어지러운 거리의 모습이 멀어지고 마음속에는 고요한 평화가 올 것 같았습니다.

먼지가 쌓이고 책이 쓰러지고 종이가 흩어진, 그런 어수선한 방과도 거리는 흡사했습니다. 사람들은 거리를 만들어 놓고도 그것을 깨끗이 치울 줄 모르고, 그 어지러움 속에서 그냥 살아갑니다.

문득 무언가에 부딪혀 문오는 감았던 눈을 떴습니다. 부딪힌 것은 골목 모퉁이의 쓰레기통이었습니다.

빌어먹을, 쓰레기통 같은 거리. 홧김에 발로 통을 차고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한길 바닥은 왜 이리 삐뚤고 울퉁불퉁한지. 기울어진 가게 간판은 차라리 떼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쓰러져 가는 집들, 사람의 신경을 대패밥처럼 헝클어 놓는 것은 바로 이런 풍경이었습니다.

대체 이 거리의 시장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문오는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현명한 시장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거리의 집들을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덥수룩한 머리도, 얽은 얼굴도, 절름거리는 걸음도, 눈에 띄는 모든 것이 그의 신경을 어지럽혔습니다.

문오의 머릿속은 마치 벌떼를 잡아넣은 것처럼 웅성거리고 어지러웠습니다. 지저분한 거리의 풍경이 그의 신경을 온통 짓이겨 놓았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생활을 정리하려 하지만, 그 정리와 통일의 마지막 종점에 도달할 날은 영원히 없을 것 같다.'

문오가 십 년 가까이 공부해 온 철학도 이 혼란을 풀어 줄 열쇠는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인간의 사실은 사실대로 두고, 그 표면을 겉핥듯이 맴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요즘 들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마음속 또 하나의 문제였습니다.

미예와 나의 인연은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미예와 문오의 만남은 결코 떳떳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예에게는 이미 남편이 있었고, 두 사람은 그 그림자 속에서 만남을 이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 얽히고설킨 마음의 실타래는 쉽게 풀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거의 지친 마음으로, 문오는 미예와 약속한 장소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거리의 그 조용한 찻집에서 두 사람은 종종 만나곤 했습니다.

어지러운 거리를 지나 어지러운 인연을 만나러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문오는 문득 운명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찻집에 마주 앉자 미예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목을 눌리고 몇 분이나 참을 수 있을까요?"

"글쎄, 뱀은 죽었다가도 다시 깨어난다고 하던데."

"그럼 사람 목숨도 뱀만큼 질긴 셈이군요. 저는 목을 눌리고 오 분이나 참았으니까요."

문오는 놀라 미예를 바라보았습니다. 미예의 목덜미에는 손가락 자국 같은 푸른 멍이 남아 있었습니다. 자신 때문에 겪는 미예의 고통이 최근 더욱 심해졌음을 알고, 문오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이름을 자꾸 대라고 하니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시원하게 말해 버리지."

"큰일 나게요. 결투라도 하려 들 텐데요."

"결투라니…" 문오는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결투. 마음이 서늘해지긴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손쉬운 해결책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문오는 대답 대신 흐른 찻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탁자 위에 낙서를 시작했습니다. 글자를 쓰다가 지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그림이세요?"

미예는 한참 바라보더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망측한 게 아니오. 미예의 눈이오. 눈방울, 눈시울, 속눈썹. 그리고 이건 눈물,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

문오는 오늘 미예에게 전해야 할 중요한 소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눈물이라니요?"

"내가 지금 한마디 하면, 미예는 이렇게 눈물을 흘릴 것 같아서 말이오."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저를 잊겠다는 건 아니겠지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미예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달라졌습니다. 문오는 눈을 꾹 감고 말을 이었습니다.

"서울을 떠나게 되었소. 갑작스레 정해진 일이라 미처 말할 틈이 없었소."

문오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학교 연구실을 나와, 지방의 한 회사에 자리를 얻게 된 참이었습니다.

"언제쯤 떠나세요?"

"남은 일들이 정리되는 대로."

미예의 속눈썹은 안개가 낀 듯 그림자 속에 젖어 들었습니다.

그때 찻집 주인이 두 사람에게 과자를 내왔습니다. 문오는 문득 그녀의 왼손에 손가락 하나가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차렸습니다. 오랜 단골임에도 그동안 몰랐던 사실이었습니다.

"적적하실 것 같으니 노래나 한 곡 걸어 드릴게요."

주인은 다정하게 축음기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이윽고 프랑스어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두 애인을 가진 여인의 노래였지만, 지금 미예의 마음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도 문오의 머릿속에는 어쩐지 그 손가락 이야기만 맴돌았습니다.

문오는 돌아오는 길에 의사 친구의 병원에 들렀습니다. 요즘 그는 남모를 피부 문제를 앓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작은 벌레에서 시작된 것이었는데, 약국에서 사 온 연고를 함부로 발랐던 것이 화근이 되어 온몸에 붉은 반점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잘 드는 칼로 피부를 한 꺼풀 벗겨 버렸으면 시원하겠구먼."

"왜 그리 극단적으로만 생각하나. 자네 요즘 신경쇠약이 꽤 심한 것 같은데."

의사 친구가 걱정스레 말했습니다.

"당분간 철학은 좀 내려놓게. 회사로 가게 된 게 자네에겐 오히려 잘된 일일세.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되는, 그런 명확한 세계에서 지내다 보면 마음이 한결 편해질 걸세."

"놀리는 건가."

"진심일세. 조급하게 굴지 말고, 천천히 지내다 보면 자연히 정리가 되는 법이야."

친구는 살균 소독제 주사를 놓아 주며 말했습니다.

"체질에 따라 신열이 나고 몸이 떨릴 수도 있으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 눕게."

문오는 그 길로 숙소에 돌아와 일찍 자리에 누�웠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문오는 몸이 몹시 떨려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등줄기가 차갑고 이가 딱딱 부딪히며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습니다. 힘을 주려 해도 중심을 잡을 곳이 없었습니다. 마치 파도에 휩쓸리는 난파선 같았습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옆에 미예가 와 있었습니다. 문오의 소식을 듣고 밤늦게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맥이 풀려 기운을 쓸 수가 없구려."

미예의 손이 든든하게 그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몸을 좀 눌러 주오. 그러면 한결 나을 것 같소."

미예가 몸을 기울여 문오를 지그시 눌러 주었습니다. 그것을 의지 삼아 문오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별안간 웬일이에요?"

"주사를 한 대 맞았더니 이렇구려."

문오는 문득 아까 병원에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애인을 기다리든 말든 생각대로 하라던 그 말이, 공교롭게도 이렇게 맞아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몸의 비밀을 숨기고 미예를 멀리했던 문오는, 이제 더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모든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듣고 난 미예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까다롭고 쌀쌀맞게 구셨군요."

"세상에는 서로 숨겨야 할 일도 있는 법이오."

"제게 숨기지 않으신들 어때요. 붉은 피부를 본다고 제가 놀라서 물러설 줄 아셨어요?"

미예는 문오의 얼굴에 몸을 기대었습니다. 그 온기 속에서 문오의 마음은 조금씩 편안해졌습니다.

출발을 앞두고 문오는 짐을 정리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낡은 세간은 팔고, 묵은 서류는 찢어 버렸습니다. 필요 없는 것들을 대담하게 정리하는 일에서 문오는 묘한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세간의 정리보다 더 큰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작별, 출발, 새로운 부임지, 그리고 집을 구하는 일까지.

미예와의 이별은 유독 힘겨웠습니다. 전날 밤 찻집에서 몇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미예는 마치 영영 헤어지는 사람처럼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차에 흔들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도, 문오의 마음은 여전히 어수선했습니다. 낯선 도시는 번잡하고 산만한 인상을 주었고, 문오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거리에서도 문오는 여전히 어지러움을 느꼈습니다. 고르지 못한 길, 쓰러져 가는 집들, 삐뚤어진 간판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는 살 집을 구해야 했습니다.

거간들을 따라 며칠을 헤맸지만 마음에 드는 집은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피부는 서서히 회복되어 갔습니다. 아침마다 이불 속에는 벗겨진 살갗이 하얗게 쌓여 있었습니다.

나흘쯤 지났을 때, 회사 동료로부터 마침내 집을 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용하고 뜰에 나무도 있는 곳이라 하니, 오랜 수고의 보람이 있는 듯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안주인이 전보 한 장을 건넸습니다.

"오후 도착 미예."

기쁘다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 가는 참인데, 또 다른 걱정이 밀려온 것이었습니다.

잠시 오는 것일까, 아주 오는 것일까. 남편과의 일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오는 온갖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역에 내려선 미예의 모습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밝고 경쾌한 얼굴이었습니다.

"근심 걱정은 없어졌어요."

"뒤를 따라오지는 않았소?"

"쓸데없는 걱정은 하실 것 없어요."

"그럼 남편은 어떻게 됐소?"

"가정을 정리했어요. 그리고 비행사가 되겠다며 동경으로 떠났답니다."

미예는 시원하다는 듯 말을 이었습니다.

"창이 난 가정에 언제까지고 사람을 붙들어 둘 수는 없으니, 모든 걸 깨끗이 정리한 셈이지요."

"비행기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볼 날이 오겠구려."

"그럼 우리는 그 사람이 하늘에서 무사하기를 빌어 줘야겠네요."

오래간만에 문오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미예가, 오히려 뜻밖의 평온한 소식을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집과 미예. 이 두 가지가 정리되었다는 사실이 문오의 마음을 넉넉히 채웠습니다. 근질거리던 피부도, 거리의 혼란도, 그 모든 불안이 어느새 마음속에서 옅어져 갔습니다.

미예와 나란히 걸어가는 길 위로, 짙은 갈맷빛 하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하늘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맑게 그의 마음을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불안과 혼란은 저 멀리 하늘 밖으로 사라지고, 그 순간만큼은 마음속에 오직 고요함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목록으로 돌아가기